병원스토리 Choieye Medical Insight

30년 안과 의사가 기억하는 세 가지 이야기⁠

choieye 원장 약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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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ieye 원장이 직접 작성했습니다.

최안과 안과 전문의

1
첫 번째 기억

90세 할머니가 일깨워 준 것 — 행복은 일상 가까이에 있다

딸과 함께 내원한 할머니는 90을 넘긴 나이인데도 깔끔하고 정정해 보였습니다. 거의 사람을 못 알아볼 정도로 시력이 나빠진 것은 진료실 문을 들어올 때의 어눌한 동작으로 짐작했지만, 눈을 본 순간 그분의 고통스러운 일상이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중년을 훌쩍 넘긴 딸도 노모의 수발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늦게 온 건 알지만 지금이라도 치료를 부탁합니다. 어떻게 되든 원망하지 않을 테니 수술만 해 주십시오."

무표정한 얼굴로 모든 걸 포기한 듯 담담하게 말씀하시니 오히려 제 생각이 단순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작은 가게에서 담배 장사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 거스름돈을 자꾸 실수로 내주기 시작하면서 뒷방으로 칩거하게 되셨다고요. "살 만큼 살았다"는 말과 함께.

세월이 가고 눈은 점점 더 어두워져, 밥과 반찬도 구별을 못할 지경이 되고 치매 증상까지 겹치니 가족들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습니다. 일 년에 몇 번 보기 드물 정도로 심한 경우여서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지만, 구순 노인이 오가며 생길 불편을 고려해 본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의대생일 때 돌아가신 저의 할머니를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수술은 쉽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술 후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해맑게 웃으셨습니다. 그 모습에 눈물을 쏟던 여장부 스타일의 딸도 기억납니다. 며칠 후 자신감이 생긴 할머니가 간단한 담배 판매도 시도하셨다고 하여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신 그 어른의 행복한 미소가 가끔 생각납니다. 행복은 일상에 가까이 있는 것을. 내게 주어진 작은 능력으로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게 만든다면 안과 의사로서 최고의 보람일 것입니다.

2
두 번째 기억

생후 3개월에 만난 인연이 수십 년 뒤 다시 나에게 말을 건다

생후 3개월 즈음 진료실에서 만난 아이는, 내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세월을 실감하게 만든 친구입니다.

전염성 눈병으로 타 안과에서 치료를 받던 중 며칠째 눈을 뜨지 않고 눈곱이 심해져 고름 수준이라고, 초보 엄마가 아기를 안고 왔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했습니다. 조심스럽게 기구로 눈을 벌려보니 현실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각막이 벗겨지면서 이차 감염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고, 큰 궤양이 중심 부위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애 엄마가 충격을 덜 받도록 수위 조절을 하며 설명했습니다. 각막에 흉터가 남을 가능성이 높고, 그 정도에 따라 시력 발달이 안 될 수도 있다고. 며칠 치료해보고 안 되면 대학병원으로 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아기 엄마는 갈 형편이 되지 않았는지 "며칠 치료해 보자"는 내 말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잔뜩 낀 막을 조심스레 제거하고 약을 새로 바꾸면서 꼼꼼히 안약 넣는 법을 알려드렸습니다. 아이는 세상 순둥이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가끔씩 방글방글 웃었습니다. 나도 따라 웃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저려왔습니다.

치료가 잘 되어 눈곱도 안 끼고 눈도 잘 뜨는 상태까지 되었지만 각막혼탁은 여전했습니다. 그러고는 서서히 잊혀 갔습니다.

20여 년이 흘러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나를 찾아왔을 때, 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미 중년이 된 어머니가 그 일을 언급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입니다. "이 선생님이 네 눈을 살리신 분이라고" 울먹이셨습니다.

눈을 보니 다소의 혼탁은 남아 있었지만, 시력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머니와 꼭 닮은 청년과 감회에 젖어 굳은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습니다. 희망을 버려서도 안 됩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닙니다.

3
세 번째 기억

가슴이 먹먹해지는, 1988년의 또 다른 자화상

서른 초반의 수련의 시절 만난 그분은, 살아가면서 어떤 불행에도 호들갑 떨지 않을 정도의 내공을 일깨워준 고마운 분으로 기억됩니다.

40대 초반의 그는 진료실 앞에 앉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습니다. 집은 부천이었고, 명동 백병원까지 오는 데 근 다섯 시간이 걸렸습니다. 올망졸망한 두 아이의 아비로 막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던 그에게, 불행은 시대의 조류를 타고 다가왔습니다.

일거리를 구하러 서울에 왔다가 하필 데모대 곁을 지나게 되었고, 최루탄이 터지자 눈을 비볐습니다. 의료보험도 없는 처지에 돈이 무서워 며칠을 기다렸으나 눈은 더 아파왔고, 결국 사람을 구별 못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어린 자식들 생각에 입에 넣었던 수면제를 다시 뱉었다고 했습니다.

"설마 죽기를 각오한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기야 하겠나라는 생각으로 왔습니다."

눈을 보니 각막궤양이 양안 모두 극심했고 고름이 흘렀습니다. 곰팡이 감염이 강하게 의심되었습니다. 병동에서 구할 수 있는 안약과 먹는 약, 무좀에 쓰는 기본적인 곰팡이 연고를 가져다드렸습니다. "돈 걱정은 마시라고, 오시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3일 후 나타난 그는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약이 듣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몇 개월 후 그는 다시 나타났습니다. 흰 지팡이를 짚고, 그러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염증은 나았으나 각막혼탁이 심해져서 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고 있고, 무료 각막이식수술을 신청해 두었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웃었습니다.

그때 동행했던 이웃 아주머니의 싸구려 반짝이 구두가 기억에 진하게 남았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요약한 듯한 장면으로.

벽돌이 벽이 되고 기둥이 되는 것처럼, 이 경험들이 꿈으로 모여졌습니다.

안과의 이야기이지만,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삶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만남과 기억들은 제게 의사의 소명을 마음에 새기게 해주었습니다.

정직한 의료를 해야겠다는 생각, 의료기술만큼은 뒤처지면 안 된다는 것. 이런 경험들이 모여 김해 최안과의 두 가지 비전 — 실력있는 의사, 정직한 안과가 되었습니다.

이 증상이 걱정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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